위인전? 위인? 뭐 볼 게 있다고.. 들어가는 말에서 소개된 것처럼 경성의 건축가들을 위인이라고 하기엔 부족해 보인다. 그나마 어울리는 사람을 꼽자면 우리나라에서 ‘최초’ 타이틀을 달았던 박길룡 정도 일까. CV를 주욱 읽어봐도 별 느낌이 들지 않는, 혼란한 사회에 살았던 이 건축가들에게서 나는 아쉬움을 느꼈다.
-도쿄국립박물관을 생각하며
현재에도 도쿄에 가면 볼 수 있는 도쿄국립박물관은 와타나베 진의 설계가 현상설계공모에서 당선되어 1937년 지어졌다. ‘일본식 취미’를 기준으로 공모했던 이 건물은 난간장식, 기둥, 기와에서 일본의 모티브가 드러나는 ‘제관 양식’을 가지고 있다. 이 현상설계공모에 지원했던 또 다른 건축가 마에카와 구니오가 있었다. 마에카와 구니오는 프랑스로 유학을 가 르코르뷔지에게 건축을 배웠으며, 그 영향에 도쿄국립박물관을 현대적인 국제주의 양식으로 설계했다. 당연히 공모에는 떨어졌다. 건축에 일본식 취미가 전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아시아에 패권을 쥐고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던 지배국 일본의 면모가 건축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이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건축이 있었다. 신앙과 민족을 가슴에 품었던 강윤의 태화사회관이다. 태화사회관은 피지배자들을 위한 교육, 종교, 복지 건축이었고 한옥의 기와, 조선식 토담, 한옥 문양을 사용한 ‘한국식 취미’를 살린 건축이었다. 일제강점기의 조선 건축가가 이 건물을 설계하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비록 태화사회관은 2년이라는 시간밖에 제 역할을 하지 못했지만, 식민지배 속에서 그 건물을 사용했던 사람들은 분명 강윤의 메시지를 느꼈으리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건축가가 단순히 무색무취의 기술자라고 취급되던 당대 사회의 인식이 있었더라도 강윤이 건물에 담으려 했던 의지는 당당히 빛났다.
"식민지인이 전통으로 민족주의를 표현하는 것과 제국이 전통으로 침략주의를 선전하는 것은 저항과 침략만큼 차이가 컸다.” - 75p
시대상황에 어쩔 수 없는 운명이 그들에게 ‘B급’ 딱지를 당연한 듯 떡 붙였다. 그저 아쉽다는 생각이다. 이 건축가들은 당대에 ‘기술가’ 타이틀이 붙여져 정치, 사회에서 떨어져 있는 보이지만, 언제나 자신의 건축에 사연을 담아냈다.
어두운 그들에게 작은 조명 하나 살포시 놓아주는 이 책에게는 정말 고맙다. 혼란스러운 과거를 파헤쳐 그들의 삶을 재 조명하는 것, 그들을 ‘뭐 좀 볼 게 있는’ 대상으로 만들어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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